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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터스텔라 중 블랙홀로 접근하고 있는 인듀어런스호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에서 다루는 ‘시간의 본질과 상대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스토리텔링 장치가 아니라, 서사와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는 핵심 요소로 사용한다. 그의 영화에서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때로는 역행하고, 반복되고, 상대적으로 변한다. 이를 통해 놀란은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독특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1.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는 비선형적 서사: 《메멘토》 (2000)

    놀란의 시간 실험은 초기작인 《메멘토》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이 영화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가진 주인공 레너드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여주는데,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선이 존재한다. 컬러 장면은 역순으로 진행되며, 흑백 장면은 정방향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레너드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며,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체험하게 된다.

    이 영화는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일직선으로 흐르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주관적이며, 기억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을 해석한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니체의 ‘영원 회귀’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같은 사건이 반복되거나 변형되며, 인간은 그것을 매번 새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상대성이론을 영화로 구현한 《인터스텔라》 (2014)

    《인터스텔라》는 시간의 상대성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영화적 서사에 녹여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영화에서 블랙홀 근처의 밀러 행성에서는 중력의 영향으로 시간이 지구보다 훨씬 느리게 흐른다. 이로 인해 주인공 쿠퍼가 행성에서 1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구에서는 7년이 지나버린다.

    이 장면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gravitational time dilation)’ 이론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이 시간의 상대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놀란은 단순한 과학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감정적인 요소와 결합한다. 쿠퍼가 밀러 행성에서 돌아온 후, 딸 머피의 나이가 자신보다 더 많아진 장면은 ‘시간이 감정적으로 어떻게 체감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리적으로는 몇 시간이었지만, 심리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 지난 것이다.

    또한 영화는 ‘시간은 절대적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인간의 감정과 시간 개념을 연결 짓는다. 이는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즉, 물리적 시간과 인간이 경험하는 주관적 시간은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3. 시간의 역행과 운명론적 세계관: 《테넷》 (2020)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인간의 선택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턴스타일’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과 물체가 시간을 거꾸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혹은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가?’라는 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으며, 결정론적 세계관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 즉, 미래는 이미 존재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선택을 해야 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논의되는 ‘블록 유니버스(block universe)’ 개념과 연결된다. 이 개념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존재하며, 시간은 단순한 인간의 인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우리가 현재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놀란은 여기서 시간의 역행을 단순한 영화적 기법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운명에 대한 깊은 철학적 탐구로 확장시킨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행동하며, 이를 통해 ‘운명은 정해져 있어도, 우리는 싸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론: 크리스토퍼 놀란이 말하는 시간의 의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 요소가 아니라, 핵심 주제로 작용한다. 그는 시간의 비선형성을 탐구하며, 기억과 현실, 상대성, 결정론과 자유의지 등의 문제를 영화적 서사 속에서 풀어낸다.

    그의 영화는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이 자신의 시간 경험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시간이 직선적으로 흐른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는 주관적이며,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놀란은 이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체험적으로 구현하며, 관객들이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시간을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궁극적으로 놀란은 시간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뒤흔들며, ‘시간을 우리가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니면 시간에 의해 우리는 조종당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영화 속에서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억, 감정, 선택과 연결된 살아있는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